[스크랩] 바보의 장
『어리석은 자는 한평생 현명한 이와 사귀더라도 진리를 모른다. 마치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이.』(법구경 「바보의 장」에서)
골퍼들은 보다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보다 기분 좋게 골프를 즐기기 위해 고수에게 한수 배우기를 원한다. 자기보다 한 수 위인 골퍼와 라운드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함께 골프를 치면서 한수 배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골퍼들은 18홀을 도는 동안 상대방에게 조언이 될만한 말은 한마디도 안 하거나 하더라도 끝날 즈음 『헤드 업 하지 마시오.』 『힘만 빼면 좋겠습니다.』 『조금만 갈고 닦으면 좋은 샷이 되겠습니다.』와 같은 흔하디 흔한, 조언이랄 것까지도 없는 말을 한마디 뱉는 게 고작이다.
자세 하나하나를 지적해가면서 친절하게 지도해주고 「아! 바로 이것이로구나!」하고 무릎을 칠만큼 결정적인 지도를 해주길 바랐는데 하나마나한 말이나 한 마디 던지고 마니 이만저만한 실망이 아닐 것이다.
골프에 일가를 이루고 있는 사람은 연습장의 레슨프로들처럼 친절하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가르쳐주지 않는다. 필드에서 설사 친절하게 가르쳐준다고 해도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가 많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돼있다고 해도 짧은 순간의 말 한마디나 지적이 오히려 그날의 골프를 망치게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수는 무언의 가르침을 끊임없이 주고 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가 휘두르는 샷 하나하나가, 그가 무심코 던지는 듯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가르침이다. 단지 배우려는 사람이 이 모든 가르침을 알아채지 못하고 놓치고 있을 뿐이다.
배움의 도를 터득한 골퍼는 고수가 한 마디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모든 행동에서 배움을 얻는다. 금방 가르침을 포착해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고 실전에 응용해 좋은 결과를 얻을 줄 안다. 물론 레슨코치와 같은 가르침을 기다리는 사람은 이런 배움을 얻을 수가 없다.
어느 날 중국 양나라 무제(武帝)가 부대사(傅大士)라는 고승을 초청하여 설법을 하게 했다. 부대사는 법상에 올라가더니 법상을 한번 꽝 치고는 곧 내려와 버렸다.
양무제가 깜짝 놀라자 옆에 있던 한 선사가 물었다.
『폐하는 잘 들으셨습니까?』
양무제가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 하자 그 선사는 『오늘 제일 큰 법문을 했습니다』고 말하고 양무제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나라 대선사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화들이 많다. 설법을 하는 사람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오묘한 진리의 세계를 전해주었는데 듣는 사람들은 멍하니 어리둥절해 있기 마련이다.
석가모니가 영산회(靈山會)에서 법좌에 올라 대중에게 연꽃을 들어보였을 때 아무도 그 깊은 뜻을 몰랐는데 마하가섭(摩訶迦葉)만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에 석가모니는 마하가섭에게 진리를 전수했다. 깊은 뜻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졌다고 해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염화시중(염花示衆)」 또는 「염화미소」라는 말이 전해졌다. 마하가섭은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제일의 제자로, 진리를 전수한다는 의미에서 석가모니가 입던 옷과 발우를 전하면서 가섭은 1대 조사(祖師)가 된다. 28대 조사가 바로 달마대사로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선종의 제1 조사가 되어 6조 혜능선사에게까지 선의 법통이 이어진다.
아무리 좋은 설법을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면 배움을 얻을 수 없다. 마음이 열려 있고, 귀가 열려 있고, 눈이 열려 있을 때에라야 가르침을 담을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다.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알이 부화될 때가 되면 알속의 새끼가 먼저 안쪽에서 껍질을 톡톡 쪼는데 이것을 줄(口+卒)이라 하고, 이때 밖에서 어미 닭이 껍질을 쪼는 것을 탁(啄) 이라 한다. 알이 부화하기 위해 바깥의 어미와 알속의 새끼가 동시에 껍질을 쪼는 것을 「줄탁동시(줄啄同時)」라고 하는데 이는 선문(禪門)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지극히 중요한 말이다. 즉 스승과 제자가 서로 의기투합해서 일체가 되어 깨달음의 세계로 나가고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스승과 제자의 호흡이 일치한다면 그만큼 배움의 교류가 활발하고 깨달음이 쉬워지는 것이다.
이 말은 선문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앞선 사람과 뒤따라가는 사람사이에 꼭 필요한 조건이다. 골프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수와 배우려는 사람이 한마음으로 일치해 있을 때 한수 한수는 전수되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골프속담은 「골프를 배우는데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